선택과 집중, 책임감, 변화 etc.!

언제 써 두었는지 모르겠는데 임시저장 되어 있어 올림 ㅋ
2017.7.14


공부도 때가 있다, 공부만 하면 되는 지금 열심히 해라. 참 많이 듣던 말이다. 무슨 소린가 했지. 머리가 나빠질거라서 그러는 건가? 일하느라 공부를 할 시간이 없어져서 그런가? 나야 공부에 뜻이 있진 않았지만, 만약 피치 못할 사정으로 '때'가 다 지나 나이먹은 후에 공부 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잠 자는 시간을 줄여서라도 열심히 하면 되지 무슨 의지 박약 스러운 소리야! 라고 생각했었다.
택도 없는 착각이었다. 문제는 지적 능력의 감퇴가 아니었다. 그리고 시간의 부족은 생각보다 굉장히 엄청난 정도였다.

어른이 된다는건, 예외로 취급받던 많은 일들을 제대로 책임져야 하는게 되는거였고, 이건 단순히 돈을 벌어야 하고 납세의 의무를 다해야 하고 그러니 회사에 엄청 묶이고 하는 정도로 표현되고 이해 되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었다. 어릴 적 생각 해 온 정도라면 그저 덜 벌고 덜 쓰자, 걍 다 포기하고 놀자 이런 결정으로 피할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실상은 단지 내 생계에 대한 책임 뿐 아니라 내가 만든 가족에 대한 책임, 그리고 내가 어린 시절 아주 맘 놓고 모든 일에 걱정 없이 예외인 것 처럼 느끼고 살 수 있게 해 주셨던 부모님에 대한 책임이 다 들어있었다.

책임감.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중 해야 하는 일을 먼저 택해야 한다는 것은 언제 누구에게나 동일하지만, 그렇기에 이를 넘어서는 사람이 특별해지는 것이지만, 나이를 먹어갈수록 이 모두에 앞서는 '더 중요한 절대적인 다른 일'이 어느 순간 생각보다 훨씬 급격한 변화로 많아지고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아졌다. 우선 순위를 조절하는 데 있어 내 선호와 취향이 어떠한 변수가 되지조차 못하는, 절대적으로 우선해야 하는 가치에 연관된 일들이 속속 생겨나는 것이다. 좀 더 게임을 하고 만화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싶어서, 혼나지 않을 만큼의 성적만을 확보하고자 정말 싫지만 적당한 공부 시간을 만드는 것이야 내 결정에 따라 조절 가능한 것이지만, 내가 만든 가정의 가족이 아프거나 어떤 일로 슬퍼하고 있는 때에 내 취미 생활이나 친구들과의 술자리를 선택이나 조율의 대상으로 올린다는 것은 전혀 의미가 다르고 아예 내 마음에서부터 애초에 있을 수 없는 일인거다. 가족 안에서의 내 위치를 포기한다는 극단적인 결정까지 하는 사람이라면 저런 상황에 놀러 가겠지만, 그게 나를 사랑해서 키워주고 내가 사랑해서 만들어 낸 가족에게 할 일인가? 그것이 공부 덜 해서 성적 떨어지고 원하는 대학과 회사에 가지 못하는 것과 과연 비교 대상이 될까? 전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예전처럼 게임 하고 책 읽고 음악 듣고 영화 보고 드라마 보고 악기 배우고 친구 만나 술 먹고 자격증 따고 를 어떻게 다 하겠나. 일단 사회인이 되어 회사를 들어오면 저 중 대부분의 '선택이 가능한' 부분은 날려버리고 두 세 가지 정도만 어떻게든 붙잡아 남기게 되는거고,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면 그 마저도 어려워 지는거다. 내가 조율하고 적당히 만질 수 없는 우선 순위를 가진 일들이 속속 생겨나면서 내가 즐겨오던 한 사람으로서의 내 삶은 점점 줄어들 수 밖에 없는 거고, 그러다보면 필연적으로 아쉬움은 따라오기 마련인 것이지.

이런 과정을 겪고 있는데 정작 가족 안에서 찾아내는 새로운 가치들이 기존에 누렸던 것들보다 더 행복함을 주지 못하다면, 과거에 대한 아쉬움만 더 커지고 커져서 잘못되는 것일테지. 새로운 행복과 사랑을 함께 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상대방이 가졌던 취향과 여가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을 함께 아쉬워 해 주고 조금의 배려를 해 줄 수 있는 배우자를 만난다는건 그래서 축복받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참 행복하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



통계 위젯 (화이트)

03
23
142104